1903년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출생했으며 1932년 일본 도쿄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.
세계적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도쿄대에서 강연했을 때
도씨가 질문했던 일은 그의 뛰어난 과학적 재능을 보여주는 사례로 소개되고 있다.
아인슈타인은 당시
“내 강연을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영특하게 생긴 한 청년만이 이해하고 어려운 질문을 했다.
너무도 관심이 가길래 알아봤더니 바로 그 청년이 조선 사람이었다“고
말한 것으로 전해졌다.
대학 졸업 후 개성 송도중학교 물리 교사로 근무하던 도씨는
‘헬륨수소분자의 양자역학적 취급’, ‘수소가스의 양자역학적 이론’ 등
논문을 미국 학술지에 발표해 이름을 알렸다.
[경성제국대학]
해방되자마자 그는 서울로 들어와 경성제국대학을 경성대학으로 바꾸는 데 앞장섰다.
그는 흩어져 있던 물리학자들을 모아 경성대학 물리학과를 정상화시킴과
동시에 경성대를 자체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노력하였다.
하지만 미 군정이 어렵게 운영되기 시작한 경성대학을 인정하지 않고
그를 비롯한 미 군정에 비판적이던 교수들을 배척하기 위해 서울 시내 여러 대학들을 통합하여
‘국립서울대학교’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하자 김일성 주석의 초대장을 받은 뒤 월북하였던 것이다.
도씨는 김일성종합대학 창립준비위원회에서 일했으며
1946년 개교 이후 물리수학부 초대 학부장, 연구원 원장, 물리강좌장, 핵물리강좌장 등을 역임히였으며
핵무기 개발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되는 도씨는
핵구조론, 양자역학, 원자로 물리 등 30여종의 교과서와 참고서를 집필하고
핵가속 장치를 비롯한 핵물리 실험장치를 개발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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